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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 2만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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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쥘 베른

원제

Vingt mille lieues sous les mers

첫 출간

1869~1870년 연재

원어

프랑스어

소개 판본

김석희 옮김, 질베르 모렐 그림, 작가정신, 2009, 종이책

ISBN-13

9788972883548

위 판본의 ISBN입니다. 번역·출판사·전자책에 따라 번호가 다릅니다.

어떤 책인가

『해저 2만 리』는 정체불명의 바다 괴물을 추적하던 사람들이 잠수함 노틸러스호에 올라 세계의 바다를 여행하게 되는 쥘 베른의 과학 모험소설이다. 바다 생물과 해저 풍경을 관찰하는 즐거움과, 육지 사회를 거부한 네모 선장의 비밀이 함께 이야기를 이끈다. 제목의 거리는 바다 아래로 내려간 깊이가 아니라 바닷속을 따라 이동하는 여정의 거리를 가리킨다. 원제의 단위는 오늘날의 한국식 리와 그대로 같지 않다.

작품의 중심에는 과학 지식에 대한 열망과 자유를 빼앗긴 사람의 불안이 동시에 있다. 바다를 마음껏 누비는 잠수함은 육지의 국경을 벗어나는 수단이지만, 배에서 나갈 수 없는 승객에게는 정교한 감옥이기도 하다.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같은 기술이 해방의 도구와 통제의 도구로 달라진다는 점이 지금 읽어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주요 인물과 서로 다른 욕망

아로낙스 교수는 바다를 연구할 기회를 놓치기 어려운 인물이다. 그는 관찰하고 분류하며 설명하려 한다. 하인 콩세유는 교수와 동행하고 질서정연하게 사물을 바라본다. 작살잡이 네드 랜드는 육지로 돌아가고 싶어 하며 실질적인 탈출 가능성에 민감하다. 세 사람의 차이는 모험에 대한 독자의 태도도 갈라 놓는다. 새 지식을 위해 더 머물 것인가, 자유를 위해 지금 떠날 것인가라는 갈등이다.

네모는 과학적 능력, 예술과 지식에 대한 취향,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연민을 보이면서도 승객의 선택권을 제한한다. 따라서 그를 단순한 악당이나 이상적인 과학자로 정리하기 어렵다. 타인에게 당한 폭력에 저항하는 일이 또 다른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그의 행동을 따라붙는다.

과학 모험소설로 읽는 방법

바다 생물의 이름과 장비의 설명은 오늘날 독자에게 길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부분은 단순한 장식만은 아니다. 아로낙스가 세상을 지식의 체계로 정리하려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독자가 육지의 일상에서 다른 규모의 세계로 이동했다는 감각을 만든다. 속도감 있는 사건만 기대하기보다 탐사 기록과 소설이 결합된 형식으로 읽으면 작품의 리듬을 이해하기 쉽다.

동시에 19세기의 지식과 상상력을 현재의 과학 설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 실제 해양 탐사 기술과 작품의 설정을 나누어 보면 과학소설의 역할이 분명해진다. 이 작품의 가치는 미래를 정확하게 맞혔다는 데만 있지 않다. 새로운 기술이 가능해졌다고 가정할 때 인간의 삶과 윤리가 어떻게 달라질지를 상상하게 한다는 데에도 있다.

상세 해설 — 결말 포함

아로낙스 일행이 찾아낸 것은 생물이 아니라 네모가 지휘하는 노틸러스호다. 승객들은 놀라운 수중 세계를 보지만 배의 비밀을 지키려는 선장의 결정 때문에 자유롭게 돌아갈 수 없다. 여정은 경이로운 풍경의 연속이면서 탈출을 늦추는 유혹의 연속이 된다. 아로낙스의 호기심은 독자에게 세계를 보여주는 동력이지만, 네드의 입장에서 보면 감금 상태를 연장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바다에서 만나는 위험은 자연만이 아니다. 네모의 복수심이 드러나며 독자는 그의 선택이 타인의 생명을 어떻게 다루는지 보게 된다. 도움을 베푸는 행동과 파괴적인 행동이 한 인물 안에 공존하기 때문에, 선장의 슬픈 과거를 이해하는 일과 그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는 일은 분리된다. 작품은 과학적 천재성이 윤리적 정당성을 자동으로 보증하지 않는다는 문제를 남긴다.

마지막에 세 사람은 탈출을 시도하고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아로낙스는 구조된 뒤 여정을 기록하지만 네모와 노틸러스호의 이후 운명을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이 소설만으로 선장의 모든 배경과 행방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후속 작품 『신비의 섬』에서 다뤄지는 정보를 처음부터 섞으면 이 책의 화자가 가진 지식의 한계와 미스터리의 구조가 흐려진다.

결말 뒤에 남는 질문은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과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 같은가이다. 네모는 누구보다 넓은 바다를 움직이지만 자신의 상처와 복수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한 인물로 읽을 수 있다. 반대로 아로낙스는 더 많은 지식을 얻는 기회를 떠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육지의 삶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한다.

판본과 함께 읽기

아동용 축약본, 재화본, 완역본은 분량과 정보 밀도가 크게 다르다. 아래는 작가정신의 한국어 판본이며 현대 삽화와 번역의 권리는 원작과 별개다. 『80일간의 세계 일주』와 비교하면 같은 작가가 교통과 이동을 어떻게 다른 서사의 장치로 쓰는지 볼 수 있다. 『프랑켄슈타인』과는 기술을 만든 사람의 책임이라는 질문으로 연결된다.

서지·참고 자료